고타키 모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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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타키 모토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로, 경상북도 지사, 내무국장, 식산국장을 역임했다. 1917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시보, 사무관, 전라북도 재무부장을 거쳤다. 전매국, 식산국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총독관방, 중추원, 철도국 등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또한 《경성철도 관리국장 구보 요조 씨》, 《우가키 총독 편린》, 《이마이다 씨와 나 / 유아사 씨에 관한 일》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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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키 모토이 | |
|---|---|
| 기본 정보 | |
![]() | |
| 이름 | 가미타키 모토이 |
| 로마자 표기 | Kamitaki Motoi |
| 별칭 | 쇼란 |
| 출생 | 1832년 |
| 사망 | 1887년 1월 15일 |
| 출신지 | 일본 가가 번 |
| 학력 |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사사 히라타 아쓰타네의 문하생 |
| 경력 | |
| 직업 | 해군 군인 개척사 관료 |
| 주요 활동 | 보신 전쟁 참여 간토쿠마루 함장 러시아 주재 일본 공사관 무관 |
| 가족 | |
| 친척 | 가미타키 사다키치 |
2. 경력
1917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 불법과를 졸업했다. 조선총독부 시보, 사무관을 거쳐 1924년 전라북도 재무부장이 되었다. 1926년부터 전매국 서무과장, 제조과장, 사업과장, 식산국 광산과장, 상공장려관장을 역임하고, 1930년에 구미로 출장했다. 귀국 후 총독관방 인사과장, 중추원 서기관, 철도국 이사, 관방심의실 사무관을 역임했다. 1936년 경상북도 지사, 내무국장을 거쳐 1941년 식산국장에 취임했다.
2. 1. 출신 배경
후쿠오카현 미이군 아지사카촌(현재의 오고리시)에서 태어났다. 1917년(다이쇼 6년)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 불법과를 졸업했다.2. 2. 초기 관료 생활
1917년(다이쇼 6년)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도쿄 제국대학법학과 불법과를 졸업했다. 조선총독부 시보, 사무관을 거쳐 1924년(다이쇼 13년)에 전라북도 재무부장이 되었다.2. 3. 주요 요직
고타키 모토이는 1924년 전라북도 재무부장을 시작으로, 1926년부터 전매국 서무과장, 제조과장, 사업과장, 식산국 광산과장, 상공장려관장을 역임했다. 1930년에는 구미 출장을 다녀왔으며, 귀국 후에는 총독관방 인사과장, 중추원 서기관, 철도국 이사, 관방심의실 사무관을 역임했다. 1936년 경상북도 지사, 내무국장을 거쳐 1941년 11월에 식산국장에 취임했다.3. 저서
- 《경성철도 관리국장 구보 요조 씨》 (1971년)
- 《우가키 총독 편린》 (1973년)
- 《이마이다 씨와 나 / 유아사 씨에 관한 일》 (1974년)
3. 1. 저술 활동의 의미
구보 요조의 저서는 일제강점기 관료의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다. 다만, 일제 관료의 시각이라는 한계점을 인지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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